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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 쏙]

냉전 끝나고 안보환경 급변하자

쓸모없이 값비싼 ‘천덕꾸러기’로


‘꿈의 전투기’로 일컬어지던 미국 공군 최신 에프(F)-22가 졸지에 ‘비운의 전투기’가 됐다.

지난달 21일 미국 상원은 내년 회계연도 국방예산에서 에프-22 7대 추가 생산에 배정됐던 17억5000만달러를 삭감했다. 미 공군은 이미 배치된 에프-22 전투기 187대 외에 7대를 추가로 생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에프-22 추가 배치를 반대했으며 이 전투기 생산 예산이 포함된 국방예산 법안이 통과되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의 표결 직후 성명을 발표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심각한 재정적자에 직면했다”며 “에프-22 추가 구입은 변명할 여지도 없는 돈 낭비”라고 상원의 결정을 환영했다.

에프-22는 너무 성능이 뛰어나 미 의회가 해외 수출 금지 법안을 만들어 기술 유출을 막으려 할 정도였다. 2006년 6월 미국에서 에프-22와 현재 미국의 주력 전투기인 에프-15·16·18 사이에 공중전 훈련이 벌어졌다. 에프-15·16·18은 현재 사용중인 전투기 가운데는 세계 정상급 전투기인데다 훈련에 참가한 조종사들도 미군 최정예였다.

훈련 결과는 놀라웠다. 144 대 0. 훈련이 끝날 때까지 에프-22는 한 대도 추락하지 않았지만 에프-15·16·18은 전멸했다. 스텔스 기능이 뛰어난 에프-22는 상대방 전투기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다. 에프-15·16·18은 에프-22가 접근하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에프-22가 쏜 미사일에 맞아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신세가 됐다.

‘전투기의 지존’이던 에프-22가 최근 미국 경제가 나빠지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냉전이 끝난 뒤 안보 환경이 급변하면서 에프-22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에프-22는 소련과 대결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 본격 개발됐다. 당시 막강했던 소련 공군에 대적하기 위해 미 공군은 장소, 시간, 전투의 성격과 상대의 능력에 관계없이 제공권을 장악하는 최고 전투기 개발을 목표로 했다. 이렇게 개발된 에프-22는 성능뿐만 아니라 비용도 세계 최고였다. 에프-22 한 대의 구매·유지 예산은 3억6100만달러에 이른다. 반면 에프-15는 미사일 등 각종 무장을 한 대당 비용이 1억3000만달러, 에프-16은 대당 4300만달러 안팎이다.

미국은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서 막대한 돈을 쏟아 개발한 에프-22를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테러집단, 무장세력과 벌이는 전투에서 에프-22를 동원하는 것은 모기 잡는 데 도끼를 휘두르는 격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냉전시대 무기인 에프-22에 집착하지 말고 이라크와 아프간의 테러리스트들을 효과적으로 격퇴할 수 있는 미사일과 이들을 감시할 수 있는 무인비행기, 장갑차 생산에 예산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이츠 장관은 에프-22 대신 스텔스 성능이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값싼 에프-35 도입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에프-35 한 대 가격은 5000만달러 안팎이다.

게다가 최근 외신 보도를 보면, 에프-22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던 스텔스 기술의 빈틈도 드러나고 있다. 에프-22 동체에 레이더 전파를 흡수하도록 덧입혀진 특수 금속이 눈과 비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에프-22 동체 표면에서 작은 조각들이 떨어져나와 이를 다시 붙이고 말리는 작업에 꼬박 하루 이상이 걸린다.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제품의 기능이 고객의 기대 수준을 넘는 과도한 고급화를 오버슈팅이라 불렀다. 오버슈팅 상황이 되면 소비자들은 쓸데없는 기능이 많고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불평한다. 너무 앞선 기술이나 상품은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

‘역대 최고·최강’인 에프-22의 몰락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국이란 ‘막강 적수’가 사라진 탈냉전 상황에서 에프-22의 성능은 시장의 요구를 너무 앞섰고, 결정적으로 너무 비쌌다.

http://news.nate.com/View/20090813n20268&mid=n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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